본당소개

개황 및 주보성인

개황

개황
본당명 천주교 서울대교구 청파동성당 주보성인 성 바오로
설립년월일 1963년 8월 13일 소재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청파로 47가길 52(청파동)
전화번호 02-704-4500 팩스번호 02-704-0049
관할구역 청파동, 효창동, 원효로1가, 용문동·공덕동·신공덕동 일부 신자수 2,423명(2018년 12월 현재)

주보성인

사도 성 바오로(Paulus)는 유대인으로 당대의 유명한 유대인 랍비 가믈리엘의 문하생으로 예루살렘에서 공부하였고. 그가 회심할 때까지는 사울이라 불렀습니다. 천막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던 그는 엄격한 바리사이파였고, 그리스도교의 열렬한 박해자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기 위하여 다마스쿠스로 가던 중 그리스도의 환시를 체험하면서(34-36년 사이) 개종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3년 동안 아라비아에서 지낸 후 설교하기 위하여 다마스쿠스로 돌아왔고, 즉각 유대인들의 맹렬한 반발에 직면하였는데 위협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아레타(Aretas) 왕의 총독 시절 39년경에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을 만나 바르나바(Bamabas)의 지원으로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입적하였습니다. 43년경에 안티오키아(Antiochia)에서 교회의 교사가 되어 이방인을 상대로 하는 대 전교의 시초가 되었으며, 45년부터 49년까지 그는 키프로스(Cyprus), 베르게, 비시다아 안티오키아, 리가오니아를 전교했고, 이 여행에서 이름을 바오로로 개명했습니다.
이 여행을 마치고 49년경에 예루살렘에 온 그는 베드로(Petrus)와 야고보 및 다른 사도들을 설득하여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처럼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음을 확신시키는데 성공함으로써 그리스도교회의 보편성 확립에 기여한 한편, 이방인 선교를 예루살렘 교회가 인정하도록 하는 등 교회의 체제로 변모하는데 크게 기여 하였습니다.

안티오키아로 돌아온 직후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제2차 전교여행을 계획하였으며(49~52년), 제1차 전교여행에서 세운 교회들을 재차 방문한 뒤, 바오로는 마케도니아를 거쳐 최초로 유럽에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그 후 안티오키아로 귀향한 그는 다시 제3차 전교여행을 계획하였으나(53~58). 2년 동안은 코린토스(Corinthos)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였으며, 이 기간 중 로마 군인들에게 체포되는 등 유대인들로부터 곤욕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58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그는 60~61년 사이에 몰타(Maita) 연안에 갇히기도 하였습니다. 그 후 그는 에페수스, 마케도니아, 그리스 등지를 재차 방문했고(63~67년), 트로아스에서 체포되어 로마로 끌러가서 사도 베드로와 같은 날에 처형되었다(에우세비우스의 견해)고 하고, 테르룰리아노에 의하면 그는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참수치명 하였다고도 합니다.

바오로는 로마서(코린토스에서 57~58년); 코린토 1서(에페수소에서 54년); 코린토 2서(필립비에서 57년); 갈라티아서(에페수에서 54년); 콜로새서, 필리피서, 에페소서, 필레몬서(로마에서 61-63년); 테살로니카1,2서(코린토스에서 51-52년) 및 사목서간의 티모테오서와 티토서 등 역사상 가장 뛰어난 그리스도교 저술가로 꼽힙니다. 사도 성 바오로 축일은 6월 29일이며, 우리 본당 축일이기도 합니다.